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Étude/작은 것들

First

 

 

담배를 배워볼까 했다. 길고 가느다랗고 잘 빠진 연초 한 개비를 입에 넣고 들이켜보고 싶은 충동. 이유는 없었다. 그저 그러고 싶은 것이다.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기 전에 주변에 물어보기 위해 흡연하는 지인들을 찾았다. 흡연자들의 세계에 발을 들이려는데 어떤 제품이 좋냐, 담배를 피우면 무슨 느낌이냐, 한번 피게 되면 못 끊게 되냐, 라는 둥의 흔한 비흡연자들의 궁금증들. 그중 친구 한 명이 말해주었다.

 

"레종 프렌치 블랙. 그냥 무난해."

 

친구는 다른 나의 궁금증들은 해소해주지 않았다. 브랜드와 라인업 그 두 가지로 일축했다. 나 또한 더 물어보려다 말았다. 어차피 피게 되면 알게 되지 않을까.

 

나는 편의점에 들렀다. 매번 지나치던 계산대 뒤의 담배 진열대가 오늘은 내 목표였다. 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말했다.

 

"레종 프렌치 블랙 하나요."

 

글자 하나하나 곱씹으며 그렇게 말했다. 레종 프렌치 블랙 하나. 아르바이트생이 뒤편의 진열대에서 한 갑을 꺼내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4500원이었다. 도시락 하나 값이었구나. 밥 한 끼 가격이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항상 돈이 아쉬웠던 이유였다. 나 또한 그렇게 될지는 나도 알 수 없다.

 

집으로 돌아와 담뱃갑 포장을 벗기고 담배를 꺼내는데 집에 라이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담배를 피우려면 불이 있어야 하지. 다시 편의점에 가려다가 가스레인지를 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다음에도 피게 된다면 라이터도 꼭 같이 사야겠구나. 라이터는 얼마던가.

 

빨갛게 끝에서 타오르는 담배를 입에 물고 들이키자 재로 변해 타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매캐한 느낌이 목구멍으로 넘어오자 나는 기침을 했다. 흡연의 첫 느낌은 잘 모르겠다였다.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자 거실이 온통 연기로 가득 찼다. 나는 베란다 문을 열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TV를 켜고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배는 빨지 않고 그냥 입에 물었다.

 

"레종 프렌치 블랙, 사서 피고 있는데."

 

"진짜 피냐. 그래서 어떤데?"

 

친구는 대단하다는 듯이 웃으며 나의 첫 경험 감상을 물어왔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모르겠어."

 

"처음엔 원래 그래. 한번 두 번 필 때마다 중독되는 거지."

 

"국가가 허락한 마약 맞네."

 

"진짜 웃기네. 너 몽롱하지? 목소리 들으니까 완전 처음 피는 사람 티 나."

 

친구는 재밌다는 듯이 놀려댔다. 숙련자라 그런지 내 상태를 잘 안다. 조금 나른해진다고 해야 하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무력감. 심리적인 것에서 오는 안정감 같은 것. TV에 나오는, 내용을 모르는 예능 프로그램을 바라보며 나는 전화기 수신부에 입을 가져다 댔다.

 

"찾아보니까 담배에도 전설이 있더라."

 

"뭔데?"

 

"너무 못생겨서 부모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한 소녀가 자살하면서 '다음 생에는 세상의 모든 남자와 키스하고 싶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그 자리에 피어난 풀이 담배래."

 

"뭐야, 그게. 괴담이냐?"

 

"그러고 보니 그런 느낌도 있네."

 

"별 희한한 얘기도 다 있네. 아, 나 팀장이 불러서 들어가 봐야 돼. 끊는다."

 

익숙한 종료음이 들리며 전화가 끊겼다. 옆으로 누워서 담배를 물고 있으니까 담뱃재가 소파 밑으로 떨어져서 쌓였다. 나는 일어나 휴지로 바닥을 닦았다.

 

담배가 되어버린 소녀의 한 부분은 나에게로 와서 소비되었다. 여자라서, 모든 남자들과 입을 맞추고 싶다는 소녀의 바람에 도움이 되진 못했지만 지금까지 키스한 남자들을 셀 수도 없을 텐데 조금은 융통성 있게 이해해주지 않을까. 그쪽 성적 취향은 모르겠지만 얹어주는 서비스 같은 거라고 생각해보면 어떨는지. 그리고 이거, 계속 피워야 할 이유도 잘 모르겠다. 다음 입맞춤은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는 처음부터 몰랐던 걸로 하자. 그 정도가 서로에게 좋겠다. 연기 가득한 방 안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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