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Étude/사랑하기에 짧은 시간

무정

그녀는 가까운 카페에서 잠깐 볼 수 있냐는 연락을 보내왔다. 그녀와는 오래전에 끝난 사이였다. 그녀를 본 날보다 헤어져서 지낸 날이 많아서 이제는 우울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와 이별한 데에 별 다른 이유는 없다. 서로 지쳐서, 그뿐인 것이다.

 

이별이 아니라 이별을 말하는 일이 어려운 것이다. 말하지 않으면 며칠을 버틸 수 있는데, 먼저 말해버리면 그쪽이 먼저 인정한 것 같으니까. 서로 이미 알고 있지만 말하는 이가 모두 떠안고 간다. 그 착각 때문에 그녀와 나는 편해지지 못했던 모양이다.

 

용기를 낸 사람은 그녀였다. 그녀는 먼저 이별을 말해 왔고 나는 그 이별을 받아들였다. 마지막에 그녀는 조금 울었다. 나처럼 그녀도 완벽한 사랑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녀의 통보에 나는 선뜻 그러겠노라 말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에 화가 나서도 아니었고, 잊어버렸던 뜨거운 감정이 되살아나서도 아니었다. 사랑할 수 있는 조금의 감정마저 시작되지 않는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너를 사랑할 수 없으니 이제는 정말로 마무리를 짓자. 나는 못 갈 것 같으니 기다리지 말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었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말했다. 사랑은 완벽한 상대를 찾는 게 아니라 완벽하지 못한 상대를 완벽히 이해하는 것이라고. 결국 너와 나의 관계는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답장을 보내고 반대편의 지하철로 향한다. 너를 보기 위해서만 타던 노선으로는 자연스럽게 발길이 끊기는 것. 거기에 아무런 감정도 없어서 잘 지내라는 말도 나오지 않는 것. 그런 것이 마지막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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