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세상 썸네일형 리스트형 거울 정이재가 죽었다. 운전해서 돌아오는 길에 부고를 받았다. 정이재라는 이름은 멀어서 잡히지 않았다. 나는 정이재 옆에 쓰인 동문이라는 단어 덕분에 가까스로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나는 입가를 손으로 쓸었다. 정이재가 죽었구나. 정이재가 죽었어. 아니, 그럴 만하다. 정이재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나는 집에 도착했으나 차에서 내리지 않고 문자 메시지가 온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연결 신호가 몇 번 가더니 모르는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부고 문자를 받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실례지만 누구신가요? ⎯아, 경황이 없어서 제가 두서없이 보냈네요. 이재 누나 되는 사람입니다. 정이재는 누나가 있었다. 장례식장인지 주변이 소란했고 목소리가 지쳐있었다. ⎯이재 휴대폰을 보고 가족이나 가까워 보이.. 더보기 인간불신 혜경은 지독한 인간 불신자였다. 혜경과 알고 지낸 지 십 년이 다 되어갈 무렵에도 그렇게 느꼈다. 나는 혜경이 말하는 사람에 내가 포함되어있다는 것을 혜경이 말할 때 알았다. ⎯나 말고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절대 모르는 거야. 나는 혜경이 그 말을 꺼내는 의도를 종잡을 수 없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혜경이 나 또한 믿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혜경이 나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친다는 문제가 아니라 혜경은 모든 이들과의 관계에서 불신을 전제로 했다. 흔히 말하는 배신을 누군가 저질렀다고 해도 혜경은 별 반응 없이 관계를 끊었을 것이다. 애초에 혜경은 제 일 외에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혜경은 내성적인 성격이었고 그리 배우고 싶은 성품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다만 혜경은 공백기가 있다 하더라도 연락.. 더보기 Hereafter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