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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세상

거울

정이재가 죽었다. 운전해서 돌아오는 길에 부고를 받았다. 정이재라는 이름은 멀어서 잡히지 않았다. 나는 정이재 옆에 쓰인 동문이라는 단어 덕분에 가까스로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나는 입가를 손으로 쓸었다. 정이재가 죽었구나. 정이재가 죽었어. 아니, 그럴 만하다. 정이재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나는 집에 도착했으나 차에서 내리지 않고 문자 메시지가 온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연결 신호가 몇 번 가더니 모르는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부고 문자를 받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실례지만 누구신가요?

 

⎯아, 경황이 없어서 제가 두서없이 보냈네요. 이재 누나 되는 사람입니다.

 

정이재는 누나가 있었다. 장례식장인지 주변이 소란했고 목소리가 지쳐있었다.

 

⎯이재 휴대폰을 보고 가족이나 가까워 보이는 지인들께 문자를 보냈거든요. 그 애가 가진 연락처가 많지 않아서. 혹시 이재와 연락하고 지내신 분이신가요?

 

십이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이재는 내 연락처를 가지고 있었다. 정이재에게 나는 가까운 사람이었나. 아니면 지우기는 것이 귀찮거나 까먹은 것은 아닌가.

 

⎯연락하고 지낸 건 아니지만 같은 과 선배였습니다. 기숙사도 같이 살았고.

 

⎯아, 그러셨구나. 혹시나 번호를 바꾼 분이 계실까 해서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정이재의 누나는 지나가듯이 말했다. 정이재의 누나는 나에게 정이재가 남긴 말이 있는지, 정이재와 만난 적이 있는지 묻지 않았다. 그러하므로 나는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나는 정이재가 어떻게 죽었는지 물었다.

 

⎯교통사고였어요. 대학생 때부터 집에 연락을 안 하고 지냈지만 멀쩡히 잘 사는 애였거든요. 저한테는 그나마 통화를 하고 지내서 바쁘니까 그러겠거니 했는데 갑자기 그런 일이…… 죄송합니다. 다시 연락드릴게요.

 

찾는 사람이 있는지 정이재의 누나 쪽에서 전화를 끊었다. 나는 통화가 끊긴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죽은 사람의 누나의 연락처가 찍혀있었다. 사람이 죽어도 세상은 돌아갔다.

 

정이재는 대학생 시절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썼다. 정이재는 나보다 한 살 어리다는 이유로 고집스럽게 말을 놓지 않는 점을 제외하면 누가 보더라도 평범했다. 키는 평균쯤이었고 밖에서 어깨를 펴고 앞을 보며 걸었고 말할 때 목소리가 기어들어가지 않고 또렷했다. 그런 정이재는 불면증을 가지고 있었다. 정이재는 서랍에 영양제를 항상 구비해 놓았다. 무슨 비타민이냐고 물었더니,

 

⎯비타민이 아니고 L-트립토판이요. 잠이 잘 안 와서.

 

라면서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그 흰색 캡슐을 정수기에서 받아온 물과 함께 삼켰다. 정이재는 잘 때 몸을 자주 뒤척거렸다. 그 알약이 정이재의 불면증 개선에 도움을 줬는지는 알 수 없다.

 

기숙사는 학생들의 음주를 금지했고 발각되면 강제로 퇴사시켰는데, 호실에 술이 있는지 없는지 검사하지 않았다. 가득 찬 분리수거 통에 찌그러진 맥주 캔이 쌓여있어도 그 또한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나는 맥주 여섯 캔을 사서 검은 비닐봉지에 넣고 들어와 치킨을 안주로 정이재와 방 안에서 마셨다. 버젓이 금기를 저지르자고 말해도 정이재는 별다른 반응 없이 자기는 탄산이 강하지 않은 걸로 사다 달라고 말했다. 선을 넘지 않는 유연한 악의. 나는 그런 정이재의 무던함을 좋아했다. 두 캔을 넘어서자 정이재는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은 웃고 자기 할 거 다 한다는 사실이 참 짜증 나고 가증스럽고 그래요. 나는 툭하면 슬프고 쉽게 비참해지는데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는 게. 내가 아픈 게 내 탓이 아닌데 내가 스스로 케어해줘야 한다는 게 너무 불공평하잖아.

 

⎯뭐야. 너 취했어?

 

⎯아냐. 저 멀쩡해요. 안 취했어.

 

캔에 맺힌 물방울을 손으로 닦으면서 정이재는 중얼거렸다. 내가 아는 정이재는 술이 셌다. 함께 간 개강총회에서 정이재는 남이 주는 소주를 넙죽넙죽 받아먹었고 두 발로 걸어서 기숙사에 돌아왔다. 먼저 뻗어서 점호 시간 전에 돌아오지 못할 뻔한 쪽은 나였다. 그런 정이재가 맥주 두 캔에 횡설수설했다. 배달시킨 치킨은 반 이상을 내가 먹었다. 정이재는 읊듯이 말했다.

 

정말 지긋지긋한 사람이 있는데 그냥 친구처럼 막 버릴 수가 없어요. 버려도 버려지지가 않아. 그런 관계예요. 그런 사람이 나한테 지울 수 없는 기억을 만들어줘서 참 힘든데 그 사람은 기억도 못 하더라고요. 나는 그날의 상황이랑 심정이 아직도 생생한데, 기억이 없대요. 나는 그런 게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내가 말하니까 울면서 미안하대요. 웃긴 거는 기억이 없으니까 미안하다는 말이 텅 비어있어요. 왜 우는지도 모르겠어. 그러고 시간이 지나버리니까 그 사람은 다 괜찮아진 줄 알아요. 변한 거 하나도 없는데. 세상 혼자 힘들어서 그냥 나한테 다 풀면서 살아. 나한테 그런 일이 있었어도 그냥 좀 이해하면 되지 그게 그렇게 난리 칠 사안이냐고 하더라고요. 무슨 마음인지 다 들통났어. 사실 나한테 하나도 안 미안해. 그 사람 입장에서는 하지도 않은 일에 미안해야 했던 거야. 이거보다 더 허무한 게 있을까. 기대한 내가 순진해 빠진 거지. 하나도 안 괜찮아요. 하나도 안 괜찮다고. 정말 징그러운 세상이야. 정말로.

 

정이재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맥주 캔을 매만졌다. 징그러운 세상이다. 이십 대의 정이재는 세상이 징그러운 모양이었다. 정이재의 세상은 젊음이 만끽할 수 있는 새로움이 가득한 이상향 같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정이재에게 달아나라고 했다. 버릴 수 없으면 네가 도망쳐라. 내 말에 정이재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가만히 숨을 쉬던 정이재는 남은 맥주 캔을 따서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리고 침대에 돌아누웠다. 반반씩 돈을 낸 치킨 한 마리는 결국 나 혼자서 다 먹었다.

 

나는 정이재의 마음을 이해해보려고 했다. 나는 새끼 때부터 쇠사슬로 발을 묶어서 기른 코끼리를 생각했다. 정이재는 코끼리였다. 평생 동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서 지금은 마음을 먹어도 몇 분 뒤면 허무함과 함께 사라져 버리는 경지. 정이재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벌게진 얼굴로 복도의 CCTV에 들키지 않게 캔은 찌그러뜨려 봉지에 싸서 버리고 치킨 박스는 접은 뒤 바깥의 분리수거함에 넣었다. 현관문을 열고 다시 들어오니 정이재는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있었다. 쪼르륵. 가만히 듣고 있으니 세면대 물소리 같기도 하고 샤워기 수도꼭지 소리 같기도 했다. 쪼르륵. 쪼르륵.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으나 정이재는 나오지 않았다. 이따금씩 두루마리 휴지를 끊는 소리가 났다. 쪼르륵. 드르륵. 탁. 많이 참은 모양이다. 이따금씩 코도 풀었다. 정이재는 내가 잠들 때까지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정이재와는 일 년을 같이 살고 다음 해에 각자 다른 관으로 배정받았다. 학기 초에 가끔 문자를 하다가 한 달이 지나자 그것도 끊겼다. 졸업을 하고 휴대폰을 바꾸니 연락처도 사라졌다. 졸업식 때 정이재는 생각나지 않았다. 일 년을 부대끼며 살았어도 얼굴을 안 보면 남이었다.

 

정이재가 말한 징그러움 속에는 세상의 불가항력 또한 포함되어 있었을 것인가. 징그러운 세상이다. 떨쳐내려고 해도 지긋지긋하게 달라붙는 모기 따위의 그것. 병원에 가지 못하고 혼자서 인터넷으로 불면증에 좋다는 영양제를 주문해 먹는 정이재는 자신이 행복하길 바랐으나 마침내 정이재와 세상은 분리될 수 없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도 세상은 있었다. 정이재는 십이 년 전부터 체념하는 법을 깨우쳤다. 정이재는 진작에 알았다. 알면서도 정이재는 살았지만 갑자기 닥쳐온 죽음에 휩쓸려서 죽었다. 정이재의 죽음은 타살이었다. 징그러운 세상 속에서 살던 정이재는 세상 때문에 죽었다. 정이재의 누나는 정이재가 잘 살고 있다고 믿었다. 나는 안다. 정이재는 겨우 살았다. 그런 정이재는 눈먼 채로 달려드는 자동차 불빛을 보면서 생애 마지막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 것인가. 정이재는 우울했으나 죽고 싶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선에서는 그랬다.

 

나는 최근 통화 기록에서 정이재의 누나라는 사람의 연락처를 지웠다. 정이재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데 장례식장에서 정이재의 사진을 보고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이십 대의 정이재는 삼십 대의 나와, 산다는 면에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도망칠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 간신히 사는 것. 십이 년 전 정이재는 세상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정이재. 맥주 두 캔에 못 이기는 척 개인사를 토로해 버리던 젊은 날의 쓸쓸함 같은 이름.

 

정이재가 죽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런 부고 문자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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