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Étude/사랑하기에 짧은 시간

Drink

"나 술 못해요."

퇴근길에 당신에게 들었던 첫 대답이었습니다. 술 한잔으로 당신과 인연을 만들어보려 했던 내 잔꾀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적잖이 과장된 몸짓과 웃고 있지만 애매한 얼굴. 그 반응을 보니 나는 당신이 정말로 그런 사람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술을 나보다 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서였습니다.

"한 번 마시게 되면 그런 이미지가 박혀버리거든요. 술을 좋아하진 않아서."

그 말에는 내가 싫은 것은 아니라는 의미가 담겨있기도 했습니다. 그 사실에 며칠간 행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시간, 그리고 술. 이 세 가지가 한데 모이면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하는 마력을 낳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만 있어도 그렇기는 합니다만.

당신은 내 생각보다 술에 대해 많이 알았고, 편의점에서 살만한 맥주 종류를 그날의 기분에 따라서 추천해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가끔은 나도 가본 적 없는 바에 나를 데려가 한 번도 입에 대보지 못한 칵테일을 경험시켜 주기도 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수많은 회식에 질려버린 나로서는 그것은 꽤 신선한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새롭게 정의해주었습니다. 그런 세계도 있다는 것. 술이 아니라 사람이 싫다는 것. 그리고 내가 당신을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것.

부서를 옮기면서 더는 당신을 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의 아쉬움을 나는 기억합니다. 술에서 깨어나듯 서서히 우리는 멀어져 갔습니다. 나는 적극적이지도 않고 둔감한 당신을 원망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당신과의 기억은 남아있어서 가끔씩 혼자서 당신과 마셨던 술을 마십니다. 매캐함과 가끔은 달콤함을 풍기는 알코올 냄새 속에는 당신이 젖어들어 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물어온다면 나는 술을 못한다는 당신처럼 대답합니다. 그들이 싫다기보다는 그들과 마시는 술과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 않아서. 아, 이제는 당신을 이해합니다. 천천히 취해가듯 타인을 알아가는 것을 원했던 당신의 마음을 이제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조심스러움이 오늘을 당신이 생각나는 날로 만들어버립니다. 깊진 않지만 때때로 생각나는 그런 술, 그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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