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사진기에는 그녀가 담겨있었다. 그녀를 만나기 시작할 때부터인가. 좋은지는 모르지만 큰 맘먹고 산 카메라는 그녀를 만날 때 항상 가지고 갔던 물건이 되었다. 늦은 오후 카페에 간 날에는 커피 잔을 만지는 그녀의 옆모습이, 저녁 무렵 갈대밭에서 노을에 얼굴이 발개진 날에는 그녀의 뒷모습이 사진으로 남았다.
사진이 좋아서라기보다는 그녀가 좋았다. 누군가 사진을 찍기보다는 그 시간에 더 집중하라고 했지만, 남자는 그러지 못했다. 사진으로 남은 그녀가 아름다워서, 그리고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녀와 함께 있었던 그 시간이 생생하게 그려져서.
어느 순간 카메라는 쓸 일이 없어졌다. 가본 적 없는 장소에서 그녀는 담담하게 이별을 고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남자에게 부탁했다.
"사진들은 지워줘."
남자는 그녀의 눈을 보았다. 나를 바라볼 때 많은 감정들이 담겼던 저 눈에 이제는 내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남자는 자연스럽게 알겠다고 대답한다. 집으로 돌아와서 남자는 카메라 앨범을 열었다. 시간대로 정리된 폴더들을 천천히 지워나간다. 사진들을 지우면서, 남자는 조금씩 가슴이 뜨거워졌다. 남자의 손은 도중 한 사진에 멈췄다. 사진 속에서 그녀는 흔들린 발만 보인다. 사진을 찍으려 할 때 그녀가 카메라를 순간적으로 치워서 생긴 실수였다. 그때 그녀는 남자에게 말했다.
"사진으로 보려 하지 말고 지금 나를 봐."
언젠가는 그녀를 비워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남겼던 추억들은 헤어지면 정리해야 할 어려움이 될 것이었다. 사진을 지워달라는 그녀의 말은 처음 봤을 때부터 이별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아서 더욱 쓰라리다.
서로가 각자가 되는 순간은 언제 와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이미 알고 있어도 그 사람이 마음 한편에 걸린다. 그럼에도 돌아서야 해서 그토록 아프다. 남자는 고개를 떨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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