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ye

메모장을 꺼내 들었다. 무엇을 쓸지 고민하다가 당신의 이름을 쓰기로 했다. 당신의 이름은 연필로 눌러써야 잘 써진다.

 

이름 세 글자를 쓰는데 7초가 걸렸다. 줄을 바꾸고 다시 썼다. 공들인 당신의 이름은 28초 만에 쓰였다.

 

획 하나마다 당신을 떠올린다. 꽃을 좋아한다는 당신에게 어떤 꽃이 좋은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작약이었다. 처음 가보는 꽃집에서 작약을 찾았다. 늦은 오후에 꽃다발을 받아 들고 당신은 부끄러워서 웃었다. 당신은 작약의 꽃말이 수줍음이라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꽃이 당신을 닮은 듯싶었다. 반대도 그럴 것이다.

 

지우개를 들어 당신의 이름을 닦아 내었다. 버려지는 글자를 보면서 당신을 잊어보려고 한 모양이다. 결국 되지 않는 일이다. 30초가 되지 않는 찰나에 당신은 나를 잠겨 들게 한다. 내가 당신으로 완연히 침염되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