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Étude/사랑하기에 짧은 시간

Passing

 

 

며칠 전부터 가벼운 감기 증상에 시달리던 그는 감기약을 먹었다. 금방이라도 잠이 쏟아질 것 같은 둔중함과 함께 온 몸이 나른해졌다.

그 순간 정적을 깨고 날카롭게 전화벨이 울렸다. 불을 끄고 막 잠을 청할 참이었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이름을 확인한 그는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지냈지?”

 

그것이 그녀의 첫마디였다. 그는, “오랜만이야.”라고 말했다. 잘 지냈다고 답할 수가 없었다. 그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녀가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올 때는 둘 중 하나였다. 울었거나, 울고 싶거나.

오늘 밤 전화를 건 그녀는 울었던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는 무슨 일이 있냐고 묻지를 않고 다만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그녀의 주저함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말했다.

 

“이제 다 끝난 것 같아.”

 

다 끝났다는 그녀의 말은 그 사람을 이제 잊겠다는 뜻이었다. 동시에 그 말은 그 사람을 잊을 수 없을까 봐 겁이 난다는 말과 같았다. 그녀에게 어떤 말을 건네면 좋을까.

 

처음에 그들은 친구였다. 그러던 차에 그가 그녀를 사랑하게 됐고, 그래서 더 이상 친구로 남을 수 없음을 그녀에게 고백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고 마침내 두 사람은 친구도 연인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녀를 잊지 못하는 것이어서, 그녀가 그 사람으로 인해 가슴을 저릴 때 그는 그녀로 인해 같은 시간을 보냈다.

 

스피커에서 그녀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그녀를 위한 말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전화를 붙들고 있던 그가 말했다.

 

“늦었는데 자. 자고나면 좀 괜찮아질 거야.”

 

그는 빈곤한 자신의 언어로 그녀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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