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은 겨울, 그녀는 길을 걷다가 남자에게 말했다.
"사랑한다는 건 걸음을 서로 맞춰가는 것 같아."
그 말에 남자는 걷는 속도를 늦춘다. 그녀보다 키가 더 큰 탓에 같은 속도로 걸어도 어느 순간이면 그녀보다 한 발 앞서 있는 것이다. 남자와 보폭을 맞추기 위해 열심히 걷는 그녀는 매번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 모습에 남자는 항상 그녀에게 미안했다. 오늘도 조심한다고 했는데 역시나 생각대로 되지 않은 듯했다.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고 걸었다. 그렇게 하면 조금이나마 그녀에게 맞출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간이 흘러서 겨울은 다시 돌아왔다. 이제 남자는 혼자서 걷는다. 보폭이 달라 애써서 걸으며 서로에게 미안해했던 그 겨울은 이제 없다. 남자의 걸음은 키가 커서 자연스럽게 빨라진다. 정신을 차려보니 집에서 멀리 나와 있었다.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빛 사이로 사람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남자는 그녀의 말을 떠올렸다. 걸음을 맞춘다.
그때 남자는 그녀의 말이 단지 천천히 걸어달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그게 아닌 듯싶다. 그저 걸음걸이만 말하는 것이 아니었으리라. 남자는 항상 그녀가 닿기 어려운 위치에 서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남자는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눈이 쌓인 거리 위로 남자의 발자국은 사람들의 것으로 뒤덮여 보이지 않았다.
너를 위한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틀렸나 보다. 걸음을 맞춰가는 게 사랑이라고 할 때 너는 나에게 조금만 나를 돌아봐달라는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겠다. 그 말을 하는 순간조차 너는 나를 배려하고 있었다. 그때를 놓쳐버린 지금, 나는 너의 걸음이 어땠는지 이제 와서야 곱씹는다.
너는 나에게 참 아픈 사람이다. 많이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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