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Étude/작은 것들

Covert

 

―산속에 고양이 신이 산다더라. 소원을 말하면 다 이뤄준대.

 

특히 소원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유는 눈에 힘을 줬다. 그것 참 전지전능하다. 고양이 주제에 뭐든지 다 들어준다라. 생선이라도 바쳤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무섭기까지 하다. 애초에 그런 신이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오, 신기한걸.

 

책상 서랍에서 책을 꺼내 펼쳤다. 이번 교시는 사회 수업인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사실 좋아하는 과목이 없다. 어떤 수업이 덜 지루하냐 그 정도 차이다. 나의 시큰둥한 반응에 유가 발로 내 의자를 툭툭 찼다.

 

―갈 거지?

 

―어딜?

 

―산 말이야. 안 궁금해? 나 갈 건데 이따 학교 끝나고 같이 가자.

 

말 같지도 않은 소문을 주워듣는 것까진 그렇다 쳐도, 이상한 계획에 나를 동참시키는 이유가 무엇일까. 유가 퉁퉁거리며 의자를 자꾸만 발로 차대는 바람에 의자를 책상 앞으로 끌어당겼다. 갈 거면 혼자 갔으면 좋겠다. 산이든 바다든 간에 빨리 집에 가서 어제 먹다 남긴 피자를 먹고 싶다. 고양이보단 피자다.

 

선생님이 들어오고 수업이 시작됐다. 오늘 수업 내용은 세계의 문화다. 유럽과 중국과 동남아를 거쳤다가 일본으로 갔다. 선생님이 준비한 자료에서는 고양이 사진이 담겨있었다. 혹시 사회 선생님이 우리의 대화를 엿들은 걸까. 우연치고는 조금 소름이 돋는다.

 

분위기를 전환할 겸 선생님의 구연동화가 시작된다. 한 귀족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떤 절의 문 앞을 통과하게 되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자신을 보고 손짓했다고 한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절 안으로 따라 들어가는 순간, 번개가 내리쳤단다. 고양이 덕분에 감전될 위험을 피한 것이다. 그 이후로 고양이는 수호신으로 숭배받았고 손을 흔드는 마네키 네코 인형이 만들어지게 되었다나. 대단하다, 고양이. 영리한 동물이다.

그나저나
고양이, 행운, 수호신.
고양이 신, 소원.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던가.

 

아, 그런데 등 좀 그만 찔렀으면 좋겠다. 내가 뒤를 돌아보자 유가 연필을 든 채 비실비실 웃고 있었다.

―아, 가자. 제발. 가자고. 응? 가자.

 

―거기 둘, 뒤로 나가.

 

결국 선생님에게 불려 버렸다. 고양이 신이 있다면 이 녀석 좀 데려가는 게 내 소원이다.

 

 

 

유는 끝내 나를 끌고 산으로 올라갔다. 문제는 같이 등산을 하던 도중 갑자기 유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같이 가자고 해놓고 먼저 도망가버리는 건 무슨 심보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아니면 일부러 나를 골탕 먹이려고 고양이 신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로 꼬아낸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유는 지금 내 옆에 없고, 늦은 오후 산속에서 나는 혼자였다.

 

지금쯤 내 피자는 출출했던 동생의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우울해졌다. 가는 길에 피자빵이라도 사 먹을까. 하나에 얼마였더라. 화가 스멀스멀 피어 오른다. 모든 건 유, 그 녀석 때문이다. 정말이지 도움이 되었던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는 친구, 아니 놈이다. 친구도 뭣도 아니다.

 

기억을 더듬으며 나는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해가 약간 기울어서 조금은 부드러운 풍경이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유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고양이 신을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내려가는 길에 위치한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폐건물 구석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희고 검은 털이 뒤섞인, 흔히 볼 수 있는 길고양이 모습이었다. 내가 그것을 신이라고 확신한 것은, 그것이 사람 말을 했기 때문이다.

 

―집에 있을 시간이지 않니.

 

초등학생의 하교 시간이 신의 첫마디였다. 나는 대답했다.

 

―진짜 고양이 신?

 

들뜬 목소리로 물어보자 그것이 웃었다. 고양이의 웃는 표정은 저렇구나. 노란 눈동자로 나를 주시하며 그것이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날 아는구나. 대단한걸. 이제 아는 인간은 몇 없을 텐데.

 

이런 비밀을 유는 대체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아무튼 먼저 도망친 그 녀석 잘못이다. 신을 처음으로 영접하는 건 선택받은 사람인 나다, 이 말이다.

 

―친구가 말해줬어. 네가 여기 산다고.

 

―친구?

 

―응. 근데 너 진짜 소원 들어줘?

 

그것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바닥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우아한 발걸음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TV에서 봤던 모델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나와 가까워지자 신은 나에게 먹을 것이 있냐고 물었다. 다짜고짜 공물을 요구하는 신이라니. 조금 께름칙했지만 나는 주머니에 든 젤리를 꺼내보였다. 그는 그런 것은 먹지 않는다며 참치나 소시지 같은 건 없냐고 되물었다. 없다고 하자 신은 조금 기운이 빠진 눈치였다. 아무래도 배가 고팠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신이 그런 걸 좋아했구나. 고양이 신이라서 취향도 고양이 같은 건가. 뭔가 쓸데없이 현실적이다.

 

준비된 공물이 시원찮아서 흥미가 떨어졌는지 그것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훌쩍 폐건물 위로 뛰어올라갔다. 조심해서 가란 말도 없이 그것은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내가 아는 신은 근엄하고 무게 있는 느낌의 그것이었는데 덕분에 환상이 깨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멋대로였다. 나는 뻘쭘해져서 산을 내려왔다.

내려왔을 때 주변 공원에 위치한 시계를 보니 오후 3시였다. 유와 학교 정문을 빠져나온 시각이 3시였는데. 나는 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초침이 흘러가는 중의 오후 3시였다. 어떠한 원리인지 알 수 없다. 나는 멍해진 채 집으로 돌아왔다. 피자는 잠자기 전까지 생각나지 않았다.

 

다음 날 유가 학교에서 나를 보더니 실컷 불만을 토해냈다. 같이 간다고 해놓고 갑자기 사라져서 온 산을 뒤졌는데 어디로 갔는지 못 찾았다고. 결국엔 5시가 넘어 집에 도착해서 엄마에게 죽도록 혼났다는 것이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집에서 가져온 소시지를 까서 입에 물렸다. 소시지를 조금씩 베어 먹으며 유가 중얼거렸다.

 

―아무튼 고양이 신, 그딴 거 없어. 인터넷 글에서 있다고 했는데 역시 순 뻥이야.


―네가 못 찾은 건 아니고?

―야, 너 찾는다고 등산 코스도 벗어나서 다 돌아다녔는데 고양이는커녕 다람쥐도 안 보이더라. 그래도 꿩은 봤어. 그건 좀 신기했다.

 

투덜대는 유를 뒤로한 채 나는 교과서를 꺼냈다. 조금 미소가 지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첫 시간은 국어 수업이다. 선생님이 들어오며 수업이 시작되었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가볍게 몰아친다. 산 쪽에서 불어오는 게 마치 어서 오라는 듯하다.
주머니 안에서 소시지 2개가 굴러다닌다.

오늘은 조금 준비되었는데
같이 있어주지 않을까. 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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